공일오비에 대해서 쓸 얘기의 시작은...
마이 라이프 스토리 안에서 초등학교 6학년 시점부터인 3집 앨범인 [ The Third Wave ] 부터일듯 하다.
1분여가 넘는 전주를 자랑해서 유명해진....
그리고 그 당시 라디오PD들이 전주덕에 난색을 표했다는 [아주 오래된 연인들] 이란
곡으로 한창 절정의 인기를 치달을 때 조분이에게 선물로 받았던 앨범.
심하게 조숙했던 나에게 범대중적인 인기를 끈 [아주 오래된 연인들] 이란 곡보다
우울한 트럼본 소리와 간드러지는(이라고 쓰고 느끼한 이라고 읽는다) 장호일 옹의
나레이션과 지금은 알 사람만 아는 안정적인 보컬의 이장우 씨의 보컬로 구성 된 곡.
중간에 (둥둥둥둥 예~ 하~ 예~)란 짧은 Hook 무척 인상적인 곡이기도 했고,
짝사랑밖에 못해봤던 그리고 심하게 조숙했던 6학년의 꼬마에겐
모든 삶을 걸어야만 했던 사랑이 있었음을, 여자에겐 현재만이 중요하단 가사에
무엇이 그리 북받혔는지 미친듯이 울었던 내 모습이 기억난다.
방문을 닫고 한구석에서 노래가사에 취해서 펑펑 울어댔던 기억.
그리고 얼마 안지나 다시 범대중적인 인기를 끈 [ The Fourth Movement ] 인 4집이 나왔고,
오덕기질을 보이던 정석원 옹의 건담에서 제목을 따 왔다는 [신인류의 사랑] 또한 역시 대히트를 쳤다.
이 앨범에서도 제일 좋아한 곡은 이 당시 세대를 살아온 사람들의 노래방 애창곡이 된
[세월의 흔적 다 버리고] 를 좋아했더랬는데...
솔직히 얘기하자면 중학교 1학년생이던 당시 나에게도..
015B는 안중에 없었다. 동시대에 너무 많은 거성들이 떠 있었으므로...
015B 3집이 나온 시점의 가요계는 파란만장했다.
서태지, 김건모, 듀스 등등등
저 당시 히트곡 하나만 나오면 시쳇말로 개나소나 백만장이 팔리는 시기였으므로...
저 당시만 해도 서태지와 듀스에 빠져있던 내게는 015B는 좀 시큰둥한 존재였다.
하지만 서태지의 은퇴와 잘못된 만남으로 대박을 쳤던 김건모선배(고등학교 선배님임)로는
뭐랄까 감성적인 무언가를 찾지 못해서 무언가를 찾아해매이던 즈음...
5집 [ Big 5 ] 가 나왔다.
처음 들었을 때의 그 충격은 아직도 잊지 못한다.
1번트랙 [바보들의 세상]은 나에게 너무나 큰 충격이였다.
음악으로 이런 메세지를 전달할 수 있구나. 중학교 2학년 이던 내게 그 앨범은 충격이란 의미로 다가 왔다.
그루브했던 리듬의 [마지막 사랑]과
Lenny Kravitz를 모방해서 만들었단 [시간]은 아직도 나에겐 애청하게 되는 곡이였다.
[마지막 사랑]은 개인적인 감성으로 [다음 세상을 기억하며]의 그 사람의 연장선상의 러브스토리란 생각이 들었다.
뭐 장호일 옹의 걸쭉한 나레이션에서 경쾌한(?) 장호일 옹의 보컬곡이므로
이때부터 이 냥반 느낌이 나에게 묻어났다는 생각이 들었다.
내가 사랑에 빠지면 애정표현이나 모든것에 적극적으로 드러내는 게
장호일 옹의 덕이 컸다(?) 라는걸 의심할 수 없달까?
그리고 [시간] 이란 곡과 함께 레니 크래비츠의 세계로 내 음악을 확장 시켜주기도 했다.
5집도 나름 상업적인 성공을 했고,
드디어 고등학교 1학년 그들의 공식적인 은퇴 앨범이라던 [ The Sixth Sense ] 가 나왔다.
96년 그들은 말세를 배경으로 한 앨범을 들고 나왔다.
그 당시 못느꼈지만 지금 생각해보면 그들(정석원 옹, 장호일 옹)은 종말이 다가올 것이라 믿었을 것으로 추측된다.
그래서 마지막 앨범이라고 칭했었을 거 같기도 한 느낌이랄까?;;
그냥 저 앨범에 대해서 떠들어보자면 결국 [대중적이고 어둡고 너무 앞서갔다]
너무 앞서갔다는 의미와 대중적이다 라는 단어는 음악 용어 자체에서는
반대되는 개념이다. 앞서갔다는 의미에서의 음악은 보통은 말아먹는 앨범이므로
하지만 그 당시 대중들의 귀와 기호를 무시하고 전세계 시류에 흐르던 말세분위기에 편승했었다는 걸
지금에서얀 조금 인식이 든다. 그 당시에 해외음악계 사정같은건 모르던 Kpop만 귀에 달고 다니던 아해였으므로...
지금의 사람들은 015B 6집에 대해서 이렇게 얘기한다. 최고 혹은 최악의 앨범이라고.
물론 맞다. 개인적인 느낌으론 21세기 모노리스를 뮤직비디오를 보면서 어쩌면 노스트라다무스가 예언한 그 날까지
석원옹은 저때는 좋았지 라고 읊조렸을 모습이 떠오른다. (물론 개인적인 상상이다.)
그래서 그는 자신의 취향껏(물론 전서계적인) 앨범을 만들었고 소위 망한 앨범을 만들었다.
전작들에 비하면 확실히 망했다. 마지막 앨범이라는 이유만으로 선방은 했지만...
다시 말하지만 망했다.
그리고 지구는 멸망하지 않았다.
아마 정석원 옹은 좀 민망하기도 했을거 같다.(이것 역시 개인적인 상상이다.)
그리고 은퇴했다는 시점에서 본인의 앨범을 들고 나오기는 민망했을 것 같을 시점...
그는 아이돌계라는 블루칩을 발견한듯 보였다. (두둥)
이가희 라는 신예를 만난 것이다.
정석원 옹 답게 이가희란 소녀의 별명을 (샤이어소녀) 라고 칭하고
(드래곤볼의 샤이어인을 말하는 그 샤이어 WOW의 지역명이 아니다.)
점점 전투력이 강해진다는 표현을 감히 했다.
물론 그 앨범을 들은 사람들은 알것이다.
진짜 샤이어소녀라고...
발라드 가수 사상 초유의 방송금지 곡 5곡이였던가?
[오빠는 황보래용] 이라는 만화 오디션을 공공연하게 PPL하는 곡이 타이틀이였던...
그 곡보다 솔직히 개인적으로 이가희 앨범 중에서 가장 추천하고 싶은 곡은 [이런 걸 바래]
30대 후반을 치닫던 정석원 옹의 가사는 이 가사에서 절정을 치달아버렸습니다.
10대 소녀가 아닌 이상 나올수 없는 가사를 탄생시켰었지요.
참고로 01년도 당시 이가희 양이 화제가 된 이유 중의 또 하나는 비스크 인형같은 외모였지요.
그리고 석원옹과 호일옹은 조용히 살기 시작하다가.
[ Final Fantasy ] 라는 헌정앨범이 나온 다는 얘기와
015B가 다시 앨범을 낸다는 이야기가 나오기 시작하고 저 앨범에 신곡이 무려 두곡이나 수록 됩니다.
그리고 대망의 7집이 발매 되죠.
놀랍습니다. 정석원 옹은 대중음악의 흐름과 자신의 취향을 맘껏 뽐내기 시작합니다.
대중적인 곡들로 가득찬 이 앨범.
쉽게 말하면 공일오비 스러운 하지만 보컬들로 인해서 015B의 색이 퇴색되어
어떤 의미론 20% 아쉬운 앨범이 되버렸지요.
물론 좋은 곡들 많습니다. 하지만 너무나 현시대를 따라간 앨범인지라...
015B스러움이라는 단어의 의미가 퇴색됐다는 이미지를 지우기 힘들죠.
도리어 좋다 생각하면서도 그저 그런 느낌의 앨범이 되었습니다.
그 이후 받은 만큼 해주기라는 싱글이 나왔습니다. 조금은 015B스러움으로 돌아간 느낌입니다만.
근데 갑자기 이런 생각이 들기 시작했습니다.
내가 너무 나만의 그리고 팬들만의 감정으로 015B를 바라본 것이 아닌가하고 말이예요.
그냥 자신들이 하고 싶은 음악을 하는 것뿐이고.
한결 같은 모습을 추구하는 모습을 팬들이 정의 내린 015B라는 잣대로 평가하고 있지 않을까 하고 말이죠.
늘 진일보한 모습의 그들이였기에 더 나은 것만 기대한 것이 아닌가 하고 생각이 듭니다.
그냥 어쩌면 그들은 그들이 서 있을 곳에 당연히 서있었는데도 말이죠...
ps. 쓰고 보니 너무 길었네요.
마이 라이프 스토리 안에서 초등학교 6학년 시점부터인 3집 앨범인 [ The Third Wave ] 부터일듯 하다.
1분여가 넘는 전주를 자랑해서 유명해진....
그리고 그 당시 라디오PD들이 전주덕에 난색을 표했다는 [아주 오래된 연인들] 이란
곡으로 한창 절정의 인기를 치달을 때 조분이에게 선물로 받았던 앨범.
심하게 조숙했던 나에게 범대중적인 인기를 끈 [아주 오래된 연인들] 이란 곡보다
우울한 트럼본 소리와 간드러지는(이라고 쓰고 느끼한 이라고 읽는다) 장호일 옹의
나레이션과 지금은 알 사람만 아는 안정적인 보컬의 이장우 씨의 보컬로 구성 된 곡.
중간에 (둥둥둥둥 예~ 하~ 예~)란 짧은 Hook 무척 인상적인 곡이기도 했고,
짝사랑밖에 못해봤던 그리고 심하게 조숙했던 6학년의 꼬마에겐
모든 삶을 걸어야만 했던 사랑이 있었음을, 여자에겐 현재만이 중요하단 가사에
무엇이 그리 북받혔는지 미친듯이 울었던 내 모습이 기억난다.
방문을 닫고 한구석에서 노래가사에 취해서 펑펑 울어댔던 기억.
그리고 얼마 안지나 다시 범대중적인 인기를 끈 [ The Fourth Movement ] 인 4집이 나왔고,
오덕기질을 보이던 정석원 옹의 건담에서 제목을 따 왔다는 [신인류의 사랑] 또한 역시 대히트를 쳤다.
이 앨범에서도 제일 좋아한 곡은 이 당시 세대를 살아온 사람들의 노래방 애창곡이 된
[세월의 흔적 다 버리고] 를 좋아했더랬는데...
솔직히 얘기하자면 중학교 1학년생이던 당시 나에게도..
015B는 안중에 없었다. 동시대에 너무 많은 거성들이 떠 있었으므로...
015B 3집이 나온 시점의 가요계는 파란만장했다.
서태지, 김건모, 듀스 등등등
저 당시 히트곡 하나만 나오면 시쳇말로 개나소나 백만장이 팔리는 시기였으므로...
저 당시만 해도 서태지와 듀스에 빠져있던 내게는 015B는 좀 시큰둥한 존재였다.
하지만 서태지의 은퇴와 잘못된 만남으로 대박을 쳤던 김건모선배(고등학교 선배님임)로는
뭐랄까 감성적인 무언가를 찾지 못해서 무언가를 찾아해매이던 즈음...
5집 [ Big 5 ] 가 나왔다.
처음 들었을 때의 그 충격은 아직도 잊지 못한다.
1번트랙 [바보들의 세상]은 나에게 너무나 큰 충격이였다.
음악으로 이런 메세지를 전달할 수 있구나. 중학교 2학년 이던 내게 그 앨범은 충격이란 의미로 다가 왔다.
그루브했던 리듬의 [마지막 사랑]과
Lenny Kravitz를 모방해서 만들었단 [시간]은 아직도 나에겐 애청하게 되는 곡이였다.
[마지막 사랑]은 개인적인 감성으로 [다음 세상을 기억하며]의 그 사람의 연장선상의 러브스토리란 생각이 들었다.
뭐 장호일 옹의 걸쭉한 나레이션에서 경쾌한(?) 장호일 옹의 보컬곡이므로
이때부터 이 냥반 느낌이 나에게 묻어났다는 생각이 들었다.
내가 사랑에 빠지면 애정표현이나 모든것에 적극적으로 드러내는 게
장호일 옹의 덕이 컸다(?) 라는걸 의심할 수 없달까?
그리고 [시간] 이란 곡과 함께 레니 크래비츠의 세계로 내 음악을 확장 시켜주기도 했다.
5집도 나름 상업적인 성공을 했고,
드디어 고등학교 1학년 그들의 공식적인 은퇴 앨범이라던 [ The Sixth Sense ] 가 나왔다.
96년 그들은 말세를 배경으로 한 앨범을 들고 나왔다.
그 당시 못느꼈지만 지금 생각해보면 그들(정석원 옹, 장호일 옹)은 종말이 다가올 것이라 믿었을 것으로 추측된다.
그래서 마지막 앨범이라고 칭했었을 거 같기도 한 느낌이랄까?;;
그냥 저 앨범에 대해서 떠들어보자면 결국 [대중적이고 어둡고 너무 앞서갔다]
너무 앞서갔다는 의미와 대중적이다 라는 단어는 음악 용어 자체에서는
반대되는 개념이다. 앞서갔다는 의미에서의 음악은 보통은 말아먹는 앨범이므로
하지만 그 당시 대중들의 귀와 기호를 무시하고 전세계 시류에 흐르던 말세분위기에 편승했었다는 걸
지금에서얀 조금 인식이 든다. 그 당시에 해외음악계 사정같은건 모르던 Kpop만 귀에 달고 다니던 아해였으므로...
지금의 사람들은 015B 6집에 대해서 이렇게 얘기한다. 최고 혹은 최악의 앨범이라고.
물론 맞다. 개인적인 느낌으론 21세기 모노리스를 뮤직비디오를 보면서 어쩌면 노스트라다무스가 예언한 그 날까지
석원옹은 저때는 좋았지 라고 읊조렸을 모습이 떠오른다. (물론 개인적인 상상이다.)
그래서 그는 자신의 취향껏(물론 전서계적인) 앨범을 만들었고 소위 망한 앨범을 만들었다.
전작들에 비하면 확실히 망했다. 마지막 앨범이라는 이유만으로 선방은 했지만...
다시 말하지만 망했다.
그리고 지구는 멸망하지 않았다.
아마 정석원 옹은 좀 민망하기도 했을거 같다.(이것 역시 개인적인 상상이다.)
그리고 은퇴했다는 시점에서 본인의 앨범을 들고 나오기는 민망했을 것 같을 시점...
그는 아이돌계라는 블루칩을 발견한듯 보였다. (두둥)
이가희 라는 신예를 만난 것이다.
정석원 옹 답게 이가희란 소녀의 별명을 (샤이어소녀) 라고 칭하고
(드래곤볼의 샤이어인을 말하는 그 샤이어 WOW의 지역명이 아니다.)
점점 전투력이 강해진다는 표현을 감히 했다.
물론 그 앨범을 들은 사람들은 알것이다.
진짜 샤이어소녀라고...
발라드 가수 사상 초유의 방송금지 곡 5곡이였던가?
[오빠는 황보래용] 이라는 만화 오디션을 공공연하게 PPL하는 곡이 타이틀이였던...
그 곡보다 솔직히 개인적으로 이가희 앨범 중에서 가장 추천하고 싶은 곡은 [이런 걸 바래]
30대 후반을 치닫던 정석원 옹의 가사는 이 가사에서 절정을 치달아버렸습니다.
10대 소녀가 아닌 이상 나올수 없는 가사를 탄생시켰었지요.
참고로 01년도 당시 이가희 양이 화제가 된 이유 중의 또 하나는 비스크 인형같은 외모였지요.
그리고 석원옹과 호일옹은 조용히 살기 시작하다가.
[ Final Fantasy ] 라는 헌정앨범이 나온 다는 얘기와
015B가 다시 앨범을 낸다는 이야기가 나오기 시작하고 저 앨범에 신곡이 무려 두곡이나 수록 됩니다.
그리고 대망의 7집이 발매 되죠.
놀랍습니다. 정석원 옹은 대중음악의 흐름과 자신의 취향을 맘껏 뽐내기 시작합니다.
대중적인 곡들로 가득찬 이 앨범.
쉽게 말하면 공일오비 스러운 하지만 보컬들로 인해서 015B의 색이 퇴색되어
어떤 의미론 20% 아쉬운 앨범이 되버렸지요.
물론 좋은 곡들 많습니다. 하지만 너무나 현시대를 따라간 앨범인지라...
015B스러움이라는 단어의 의미가 퇴색됐다는 이미지를 지우기 힘들죠.
도리어 좋다 생각하면서도 그저 그런 느낌의 앨범이 되었습니다.
그 이후 받은 만큼 해주기라는 싱글이 나왔습니다. 조금은 015B스러움으로 돌아간 느낌입니다만.
근데 갑자기 이런 생각이 들기 시작했습니다.
내가 너무 나만의 그리고 팬들만의 감정으로 015B를 바라본 것이 아닌가하고 말이예요.
그냥 자신들이 하고 싶은 음악을 하는 것뿐이고.
한결 같은 모습을 추구하는 모습을 팬들이 정의 내린 015B라는 잣대로 평가하고 있지 않을까 하고 말이죠.
늘 진일보한 모습의 그들이였기에 더 나은 것만 기대한 것이 아닌가 하고 생각이 듭니다.
그냥 어쩌면 그들은 그들이 서 있을 곳에 당연히 서있었는데도 말이죠...
ps. 쓰고 보니 너무 길었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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